정의
일제강점기 때, 대한민국청년단 재무부장, 임시정부 외사국장, 상해 교민단 서구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4월 이동녕(李東寧)·이시영(李始榮)·여운형(呂運亨) 등과 같이 제2차의정원회의에 참석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하였다. 그 해 5월 2일 재원염출 방침에 대한 각 지방의원의 의견을 들은 임시의정원회의에서는 구급의연금과 인두세(人頭稅) 모집, 내외에 공채 모집 등의 방법을 가결하였다.
그 뒤 각 지방에서 우선 구급의연금 모집위원 3명씩을 선거하여 업무를 수행하게 할 때, 여운형·박희선(朴熙善)과 함께 경기도 대표가 되었다. 이후 대한적십자회의 회원 모집활동에도 종사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참사(參事)와 외사국장(外事局長) 등을 역임하였다.
1923년에는 김상옥(金相玉)의 귀국을 주선,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최초로 시가전을 전개하도록 뒷받침해 주었다. 같은 해 상해 교민단의 서구위원(西歐委員)으로, 임시정부 외곽단체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였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임시의정원 의원을 역임하였다.
1932년 이봉창(李奉昌)과 윤봉길(尹奉吉)의 의거 후 검거 위협을 받고 항저우[杭州]로 피신, 독립투쟁을 계속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임시의정원기사록(大韓民國臨時議政院紀事錄)』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성』(이현희, 동방도서, 1987)
-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 『독립운동사』 4(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2)
- 『한국독립운동사』 1∼4(국사편찬위원회, 1965∼1968)
- 『朝鮮獨立運動年鑑』(在上海日本總領事館警察部 第二課編, 東文社書店,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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