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형조판서, 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14년 진향사(進香使)가 되었고, 1615년 동지 겸 진주사(冬至兼陳奏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623년 인조반정을 계기로 훈작(勳爵)을 박탈당하고, 원주로 물러나서 생활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난을 일으키자 행재소에 나와 국왕을 호위함으로써 다시 임용되어 춘천부사가 되고, 그 뒤 10여 년 동안 지방관을 지내다가 내직으로 들어와 예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禮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당하여서는 국왕을 남한산성으로 호종하고 전란종식을 위하여 헌신, 노력한 공이 커서 자헌(資憲)에 이르렀다. 1638년 한성부판윤과 형조판서 및 지의금부사를 거쳐, 1647년 우찬성이 되었다. 그 뒤 1658년(효종 9) 판중추부사가 되어 기로소에 들어갔다. 치적 중에서 특이한 사실은 소금[鹽] 생산을 높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염호(鹽戶)에 대한 역환미곡정책(易換米穀政策)을 제창한 일이다. 시호는 장정(莊貞)이다.
참고문헌
- 『명종실록(明宗實錄)』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인조실록(仁祖實錄)』
- 『효종실록(孝宗實錄)』
- 『현종실록(顯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병자록(丙子錄)』(나만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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