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순창 출신. 박만조(朴萬祚)의 아들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고, 최익현(崔益鉉)이 거의하여 1906년 6월 태인(泰仁) · 순창(淳昌) 등지에서 활약할 때 인근의 포수들을 규합하여 그 휘하에 들어갔다.
1907년 최산흥의 보부상 부대와 합세하여 그해 10월경 일본군수비대를 격살하였다. 1908년 6월 의병장 양윤숙(梁允淑)이 동지를 규합하여 거의하자, 이에 가입하여 도포장(都砲將)이 되었다.
1909년 1월 중순경 동지 60여 명과 함께 총 40자루를 휴대하고 순창군내의 여러 마을에서 활동하다가 붙잡혔다. 1910년 1월 26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