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중기에, 경기전참봉, 헌릉참봉, 왕자사부 등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임계영(任啓英)·김익복(金益福)·문위세(文緯世) 등과 보성(寶城)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정병 700여 명을 모집하고, 문인 안방준(安邦俊)을 종사(從事)로 삼고 장자인 박근효(朴根孝)를 참모로 삼았으나, 병으로 의병을 통솔할 수 없자 임계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1597년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 적이 호남을 침범하자, 전 판관(判官) 송홍렬(宋弘烈), 생원 박사길(朴士吉) 등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고 의병장이 되었다.
동복(同福)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으나 병이 악화되어 죽었다. 좌승지에 추증되고 보성의 용산서원(龍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참고문헌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죽천집(竹川集)』
- 『성호집(星湖集)』
- 『은봉전서(隱峯全書)』
-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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