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향사(香史). 본명은 오계화(吳桂花). 14세에 이화중선(李花中仙)의 대동가극단에 입단하여 소리에 입문하였으며, 15세에 박지홍(朴枝洪)에게 단가와 판소리 몇 대목, 조학진(曹學珍)에게 「적벽가」, 1937년 강태홍(姜太弘)에게 가야금병창을 시사하였다.
박동실(朴東實)에게서 「흥보가」 · 「심청가」, 유성준(劉聖俊)에게서 「수궁가」, 이기권에게서 「춘향가」를 이수하였으며, 1941년 가야금병창을 오태석(吳太石)에게 사사한 뒤 1968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가야금병창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여성국악동호회 · 한국민속예술학원 등을 설립하였으며, 미국 · 일본 · 프랑스 · 독일 등 많은 해외공연으로 한국전통음악을 널리 세계에 알렸다. 1979년 단가 · 판소리 중에서의 병창곡과 자신의 편곡 및 창작곡 등 50곡을 실은『박귀희가야금병창곡집』을 출판하였다.
더욱이 국악교육에 깊은 뜻을 두어 1960년 국악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988년 국악예술고등학교의 이전과 발전을 위하여 전 재산을 기증하였다.
국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73년 국민훈장 동백장, 198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안숙선(安淑善) · 강정숙(姜貞淑) · 김성녀(金星女) 등에 의하여 그의 가야금병창곡이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