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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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 조선 후기
  • 일제강점기
대한제국기 때, 기삼연 의진에서 종사, 포사장 등으로 활동한 의병장.
이칭
  • 경화(京化), 화옥(化玉)
  • 이칭박경래(朴慶來)
인물/근현대 인물
  • 본관밀양(密陽)
  • 사망 연도1910년(순종 3)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74년(고종 11)
  • 출생지전라북도 고창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수
  • 최종수정 2024년 05월 2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대한제국기 때, 기삼연 의진에서 종사, 포사장 등으로 활동한 의병장.

개설

본관은 밀양(密陽). 이명은 박경래(朴慶來). 자는 경화(京化) · 화옥(化玉).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고창 출신. 박준식(朴準植)의 아들이다. 한미한 가정에서 출생하였으며, 언변과 기개가 뛰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체결되고 기삼연(奇參衍)이 거의하자 무기를 수집하여 제공하고, 전수용(全垂鏞) 등과 종사로서 활약하였다.

1907년 9월 모양(牟陽: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기고의 무기를 탈취할 계획으로 습격하였으나 패전하여 의병은 무기를 버리고 흩어졌다. 이에 그 무기를 수람하였다가 의진에 다시 제공하였다. 그뒤 포대(砲隊)에서 천자포(千字砲)를 휴대하고 광주 · 담양 · 순창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1월 기삼연의 순국 후 격문을 지어 돌려서 의병활동을 독려하였으며, 포사장(砲士將)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의병대토벌작전의 전개로 의병활동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장성(長城)으로 돌아가 군사훈련과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였고, 1909년초 전수용 의진과 연합하여 남포(藍浦) · 부안(扶安)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같은 해 4월 부안 상서면에서 일본 기병대와 교전하였으나 패하여 가협(加峽) 산중으로 피신하였다. 그뒤 은신처가 드러나 붙잡혀 1909년 12월 광주재판소 전주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다음 해 2월 옥중에서 음독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1973)

  • - 『독립운동사자료집』 2-별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1974)

  • - 『한국독립운동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 『朝鮮獨立運動』 Ⅰ(金正明 編, 原書房,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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