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대한제국기 때, 기삼연 의진에서 종사, 포사장 등으로 활동한 의병장.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07년 9월 모양(牟陽: 지금의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기고의 무기를 탈취할 계획으로 습격하였으나 패전하여 의병은 무기를 버리고 흩어졌다. 이에 그 무기를 수람하였다가 의진에 다시 제공하였다. 그뒤 포대(砲隊)에서 천자포(千字砲)를 휴대하고 광주 · 담양 · 순창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1월 기삼연의 순국 후 격문을 지어 돌려서 의병활동을 독려하였으며, 포사장(砲士將)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의병대토벌작전의 전개로 의병활동이 소강상태에 빠지자 장성(長城)으로 돌아가 군사훈련과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였고, 1909년초 전수용 의진과 연합하여 남포(藍浦) · 부안(扶安)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같은 해 4월 부안 상서면에서 일본 기병대와 교전하였으나 패하여 가협(加峽) 산중으로 피신하였다. 그뒤 은신처가 드러나 붙잡혀 1909년 12월 광주재판소 전주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으나, 다음 해 2월 옥중에서 음독자결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독립운동사』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1973)
- 『독립운동사자료집』 2-별집 1(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1974)
- 『한국독립운동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 『朝鮮獨立運動』 Ⅰ(金正明 編, 原書房,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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