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이 내한하였을 때 광복군 신의주·선천 특파결사대원들이 조선의 실정과 독립의지를 호소하기 위하여 거사계획을 세웠으나 이루지 못하자, 9월 1일 박치의(朴治毅)·임용진(林龍鎭) 등과 같이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또한,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이름으로 된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을 살포하였다. 이때에 임용진이 떨어뜨린 박치의의 부채가 단서가 되어 체포되어서 박치의는 사형을, 박세건은 10년 징역형을 언도받았다. 1927년 2월에 감형으로 출옥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