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순백(純伯), 호는 건재(健齋) 또는 명경(明鏡). 선산(善山) 출신. 할아버지는 진사 박운(朴雲)이고, 생원 박호(朴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광주이씨(廣州李氏)로 이종악(李宗諤)의 딸이다.
이황(李滉)·노수신(盧守愼)을 찾아 경의(經義)를 토론, 학문을 인정받았다. 1576년(선조 9) 복시(覆試)에 낙방한 뒤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위기지학(爲己之學: 자기를 수양하고 닦는 학문)에 몰두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경임(盧景任)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항전하였으며, 그 공으로 군자감참봉이 되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사하였다. 극진한 효도에 풍류가 높았고 시문에 뛰어났다.
저서로는 『건재일고(健齋逸稿)』 2권 1책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