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평양 출신. 1944년 5월 22일 이른바 학도지원병으로 일본군에 강제징집당하였다. 중일전쟁에 투입된 뒤 독립군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군 병영을 탈출,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였다.
지대장 김학규(金學奎)의 노력으로 푸양[阜陽]에서 중국 중앙육군군관학교 제10분교 간부훈련단 한광반(韓光班)에 입학하여 독립전선에서 필요로 하는 간부로서의 자질과 중국군과의 연합작전기능 및 독립 후 국군의 기간요원이 가져야 할 훈련을 받고, 한성수(韓聖洙)·장준하(張俊河)·김준엽(金俊燁) 등 50여 명과 함께 제1기로 졸업하였다.
1944년 11월 21일 교관 신송식(申松植)의 인솔로 충칭[重慶] 광복군총사령부로 옮겨가, 이영길(李永吉)·송병철(宋炳喆) 등과 함께 총사령부 기간요원으로 활약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그 뒤 총사령부 주호판사처(駐滬辦事處)에 배속되어 교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안전송환문제를 처리하다가 귀국하였다.
1963년 대통령 표창,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