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선천 출신. 가명은 박승세(朴承洗).
3·1운동 때 선천군 신부면의 원동교회 목사로서 전교우를 동원하여 만세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0년 9월 1일 미국의원단일행이 내한하였을 때,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새벽 3시에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세칭 선천서투탄사건의 범인 16인 중의 한 사람으로 활약하다 잡혀 징역 5년을 언도받았다. 신의주감옥에 복역 중 병보석으로 출옥하자마자 1922년 8월 4일 영면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