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로 인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간관 전원이 면직처분을 받게 되었는데, 박융도 사간 정준(鄭悛), 헌납(獻納) 정지아(鄭之雅) 등과 함께 파직되었다. 그 뒤 재서용(再敍用)되어 전한(典翰)이 되었지만, 1418년에는 윤림(尹臨) 등 25인과 함께 어떤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고, 직첩이 환수되었다가 곧 재서용되었다.
1423년(세종 5) 1월 강원·황해·평안도에 지난해의 기근으로 인해 기민이 크게 발생하자, 해당지역 수령들의 진제(賑濟: 빈민이나 이재민의 구제) 상황파악을 위해 경차관을 파견하였는데, 이조좌랑으로 강원도에 파견되었다. 그 뒤 경외(京外) 여러 관직을 거쳐 군수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시문집인 『우당집(憂堂集)』이 있다.
참고문헌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조선도서해제(朝鮮圖書解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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