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비안(比安). 자는 자첨(子瞻). 할아버지는 선교랑(宣敎郞) 박계인(朴繼仁)이고, 아버지는 삭주부사(朔州府使) 박희성(朴希聖)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청계군(淸溪君) 이채(李彩)의 딸이다.
1604년(선조 37) 풍병을 앓는 아버지를 지성으로 간호하여 낫게 하였고, 임진왜란 때 학질을 앓는 계모 민씨를 업고 피난하느라고 처자를 돌보지 못하여 마침내 부인 박씨까지 잃었다. 이러한 효행으로 1604년 헌릉참봉(獻陵參奉)에 제수되었다.
1606년 아버지의 상을 당하자 3년 동안 시묘하며 애통해한 효행으로 정려가 세워지고, 『동국신속삼강행실(東國新續三綱行實)』에 실렸다. 1610년(광해군 2) 귀후서별제(歸厚署別提)가 되었으며, 1611년 청백리의 후손이라 하여 동부주부(東部主簿)·감찰 등을 거쳐 1613년에 신령현감이 되었으나 관찰사의 모함으로 파직되었다. 1623년 다시 비안현감으로 나가 암행어사에게 추천을 받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