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의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광복군총영의 결사대원들과 선천경찰서 투탄 의거를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4년(고종 41)
사망 연도
1921년 9월 30일
출생지
평안북도 선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광복군총영의 결사대원들과 선천경찰서 투탄 의거를 전개한 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평안북도 선천 출신. 3·1운동 당시 1919년 3월 1일 만세시위를 일으킨 선천 신성학교(信聖學校)에 재학 중이었다.

만주 관전현(寬甸縣) 소재의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의 결사대원 이학필(李學弼)·임용일(林龍日)·김응식(金應植) 등이 찾아온 것을 기회로 1920년 8월 24일 방한하는 미국의원단에게 독립진정서를 제출하고, 동시에 선천 정거장과 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독립만세를 불러 독립의지를 과시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학필은 다시 만주로 가서 폭탄 몇 개를 가져왔는데 이미 미국의원단은 경성을 떠난 뒤였다. 그러나 9월 1일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경찰서 현관을 파괴하였으며, 그 자리에서 조선인 관리들의 사직과 재산가들의 독립운동자금 원조를 요구하는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을 뿌리고 도주하였다.

또 그들 중 한 사람은 같은 시각에 선천군청 토지대장창고에 폭탄을 던졌으나 불발되었다. 그해 9월 7일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1921년 4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이 언도되자 이에 불복, 경성고등법원에서 상고하였으나 기각되어, 그해 9월 평양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대한민국독립운동공훈사』(김후경, 광복출판사, 1983)
집필자
박현서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