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791년(정조 15)에 박필관(朴弼寬)이 격쟁(擊錚 : 원통한 일이 있는 사람이 임금에게 하소연하려 할 때 거둥하는 길가에서 꽹과리를 쳐서 하문을 기다리던 일)을 통해 원정(原情)을 올린 사건.
개설
내용
그런데 이 격쟁이 특히 주목되는 점은 그 내용에 이민(吏民)이 함부로 계(契)를 결성함[結契]과 상천(常賤)이 족보를 위조하는 것[僞譜]과 소를 함부로 잡는 것[屠牛], 산 소나무를 남벌함[斫松]과 같이 국가에서 당연히 금하는데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는 일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호우(豪右)들이 토지와 노비를 겸병하는 폐단을 언급하면서 노비는 30구(口), 토지는 30결을 넘지 않도록 제한할 것과 그 밖에 군역에 대한 수포(收布)가 20척이 넘지 않도록 제한할 것을 건의해 제도의 개선을 통해 민생의 해결을 요구한 점이다.
이는 이 시기 격쟁이 양적으로 늘어난 것에 그치지 않고 내용적으로도 민인들의 사회 의식을 표출하는 방법으로까지 발전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사건의 처리에 대해 형조에서는 노비·토지·군포문제를 거론한 점을 매우 외람된다고 하여 죄를 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몇 가지 문제는 말은 좋지만 시행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나 결계·위보·도우·작송 등 4개의 조목은 마땅히 금해야 할 일이므로 이 조목만 뽑아서 각 도에 신칙(申飭)해 엄금하도록 교를 내렸다.
참고문헌
- 『정종실록』
- 『승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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