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대건(大建). 박덕로(朴德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장령(掌令) 박율(朴栗)이고, 아버지는 박천서(朴天敍)이며, 어머니는 김흥의(金興義)의 딸이다.
1584년(선조 17) 18세로 친시 문과에 장원하여,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이 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26세로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상주에서 싸우다가 윤섬(尹暹)·이경류(李慶流)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
전사 당시 함양 사람 인언룡(印彦龍)에게 말하기를, “나는 18세에 장원급제하여 나라의 후한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전세가 이처럼 불리하니 내가 살아서 무슨 면목으로 왕을 뵐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그 당시 윤섬·이경류 등과 함께 3종사관(從事官)으로 일컬어졌다. 직제학(直提學)에 추증, 상주의 충의단(忠義壇)에 봉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