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은 임화수(林和秀, 일명 權重珏)이었다. 임화수는 반공예술인단장으로서 한국연예주식회사 사장·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서울특별시극장협회 부회장·한국무대예술원 최고심사위원 등의 직함도 가졌다.
이 단체는 겉으로는 반공을 내걸었으나 사실상 자유당의 전위대 구실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자유당과 경찰의 옹호를 받아서 안하무인의 행패를 부렸다. 이에 따라 문화예술계는 모두 이 단체의 영향권내에 있게 되었다.
임화수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 꼼짝 못하게 하였고, 배우를 비롯한 영화계 사람들은 이들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단체는 ‘시민위안의 밤’이라는 것을 서울운동장에서 열어 시민들을 모아놓고, 연예인들을 동원해서 이승만(李承晩)과 이기붕(李起鵬)을 정·부통령에 당선되도록 선전함으로써 웃음을 사기도 하였다.
자유당 말기에는 문교부장관설까지 나돌 정도로 기세등등하였던 반공예술인단장 임화수의 권세도 4·19혁명으로 끝나 5·16 뒤 붙잡혀, 혁명재판정에서 곽영주(郭永周)와 함께 사형이 선고되어 집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