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비란 소매가 짧은 데서 나온 이름이다. 반비는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복식금제 속에 나오는데 남녀가 다같이 입으며 표의와 같은 고급직물로 지어 입고 있다.
『삼재도회(三才圖會)』에서는 “수나라에서는 내관이 반도(半塗)라는 장수의(長袖衣)를 입었는데, 당 고조가 그 소매를 감하고 이르기를 반비라 하였다. 이는 지금의 배자(背子)이다. 강회(江淮)에서는 혹 이르기를 작자(綽子)라 하여 사인(士人)들이 다투어 입는데, 대개 수나라에서 처음 만든 것이다. 금속에 이름을 답호(褡○)라 하고, 또 이르기를 배심(背心)이라 한다.”고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그 실린 그림은 우리 나라의 쾌자(快子)와 비슷하여 등솔을 길게 째고 소매가 없다. 그러고 보면 남자용 반비는 후세에 와서는 반소매가 아니고 아주 소매가 없어진 것으로 변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자용 반비 곧 배자는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 “길이가 치마와 가지런하며 깃은 마주 대하고 옆이 트이고 둥근 소매이거나 반소매 또는 소매가 없다. 우리 나라 몽두의(蒙頭衣)가 그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전기에 있었던 이 몽두의는 자취를 감추고 근래의 배자는 마고자와 같으나 소매가 없고 양 옆구리의 귀가 겨드랑이까지 트여 있어 옛 반비의 잔영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