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권 3책. 목활자본. 저자 생존시에 스스로 편집해두었던 듯하다. 그가 죽은 뒤에 맏아들 능해(能海)가 1683년(숙종 9)에 간행하였다.
『방곡집』 권두에 윤응선(尹應善)의 서문과 저자의 자서(自序)가 있고, 권말에 능해의 발문이 있다. 시 572수, 서(書) 5편, 서(序) 13편, 기(記) 6편, 발(跋) 3편, 설(說) 6편, 표(表) 9편, 제문 6편, 잡저 12편이 수록되어 있다.
『방곡집』의 시에는 저자의 문인으로서의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시집자서(詩集自序)」에서는 시는 생활의 모든 국면의 활동과 감회에서 절로 솟아 나왔기 때문에 마치 풀벌레가 그의 계절을 만나면 저절로 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연스러운 한 면모라고 생각하였다.
또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의 논조를 빌려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의 주장을 재해석하여 사람이 궁하여 시가 나오는 것이지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하는 것이 아님을 주장하였다.
정행석은 시의 자연적인 발로를 중시하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시 가운데서도 가을에 대해 유달리 애착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가을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기고 있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당시풍보다는 담백하고 절제된 송시풍에 가깝다.
철학적 경향의 작품으로는 『방곡집』 권4에 수록되어 있는 「장가행(長歌行)」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잡저 가운데에 「소설계(小說誡)」는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 「구운몽(九雲夢)」·「남정기(南征記)」·「홍백화전(紅白花傳)」 등의 소설을 읽고 쓴 것으로 중국소설의 답습을 비판하고 있다.
『방곡집』의 「안빈잠(安貧箴)」은 홍범육극(洪範六極)의 첫째인 ‘빈(貧)’의 의미와 그 구체적 실천방안을 유교적 전통윤리의 입장에서 논의한 글이다. 「호남원유록(湖南遠遊錄)」은 호남지방을 중국의 강남지역과 비유하면서 물산의 풍부함, 인재의 다양함, 산수의 부드러운 아름다움 등을 기행문 형식으로 서술한 글이다.
「속리남유록(俗離南遊錄)」은 친지들과 속리산을 유람한 감흥을 기록한 글이다. 여름 속리산의 아름다움을 간결하고 웅장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장서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