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진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때, 위화면 청년단원을 동원하여 일본경찰 주재소를 습격한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출옥 후에 광복군 제3지대 공작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칭
배여성(裵麗星)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0년(순종 3) 4월 14일
사망 연도
1948년 12월 30일
출생지
평안북도 신의주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위화면 청년단원을 동원하여 일본경찰 주재소를 습격한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출옥 후에 광복군 제3지대 공작원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일명 배여성(裵麗星).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

생애 및 활동사항

1931년 신의주군 위화면에서 청년단을 결성하고 그 단장으로 추대되어 남·북만주에서 활약하는 독립군을 지원하였다.

만보산사건으로 한때 한·중농민간의 분쟁이 일어나 일본경찰이 이를 역이용하고 사고확대를 획책하자, 배경진이 소속되었던 위화면의 청년단원 수십명을 동원하여 일본경찰 주재소를 여러 차례 습격, 방화하고 격투 끝에 잡혔다.

이로 인하여 다음 해인 1932년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복역하였으며, 1943년 3월경 중국으로 망명하여 광복군 제3지대 공작원으로 입대하였다. 여기서 국내의 거점확보와 정치·경제·사회를 교란하라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령에 따라 입국준비를 위하여 북경(北京)에서 동지포섭과 한국인 학생들의 비밀지하공작, 독립사상 및 민족의식 고취, 일제의 패망주지 등 공작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다수의 한국인 청년을 광복군에 편입시켜 국내 진입작전을 조력하게 하는 등 최대의 공작을 전개하면서 항일전선과 조직망을 구축하며 활동하다가 8·15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3·1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법통성』(이현희, 동방도서, 1987)
『대한민국임시정부사』(이현희, 집문당, 1982)
『독립운동사』 6(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5)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身分帳指紋照會回報書)」
「광복군명단(光復軍名單)」
집필자
이현희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