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자장(子張), 호는 모정(慕亭). 아버지는 부정(副正) 배영(裵瑛)이다.
1590년(선조 23) 사마시에 합격,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곽재우(郭再祐)를 도와 창녕의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수비하였다.
1608년 사과(司果)로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612년(광해군 4)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세자시강원의 겸필선(兼弼善)·보덕(輔德), 동부승지·병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계축옥사 때 죄인을 추국하는 일에 공을 세웠고, 특히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에 적극 참여하였기 때문에 1623년 인조반정으로 삭직되었다. 문장과 글씨에 능하였으며, 특히 초서·예서에 뛰어났다. 글씨로는 「기자정석각」이 있다.
저서로는 『모정집(慕亭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