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1997. 서울 출생. 4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시작하였고 6세부터 아버지를 따라 순회 연주활동을 하였다. 6세 때인 1936년 8월 1일 평양기자구락부(平壤記者俱樂部主催) 주최로 평양에서 데뷔 독주회를 개최하여 ‘천재소년 바이올린 연주가’란 평을 받았고, 이어 전국 각지를 돌며 순회연주회를 개최하여 ‘천재소년’으로서의 명성을 날렸다.
13세 때인 1943년 만주로 가 하얼빈교향악단의 단원으로 활동을 하였고, 1970년대부터는 북한의 만수대예술단 바이올린 연주가로 활동을 하였다. 국제 콩쿨에서 여러 차례 입상하였으며, 세계적인 명성이 있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쿨 바이올린부문의 심사위원을 지낸 바 있다.
인민배우의 칭호를 받았고, 평양음악무용대학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면서 북한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가로 활동을 하였다. 북한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려 영구를 ‘애국열사릉’에 안장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