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안채와 사랑채, 곳간채로 이루어진 중농규모의 남부지방 민가이다. 대숲이 감싸는 완만한 경사지에 석축을 쌓고 안채를 남향하여 배치하였으며, 마당을 사이에 두고 앞에는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 서쪽에 3칸의 곳간채가 지붕을 맞대어 나란히 위치함에 따라 집의 전체적인 배치는 두이(二)자형을 이룬다. 대문은 본래 사랑채 동단에 있으나 마당 서쪽에 새롭게 문을 만들면서 이 문이 주 대문같이 보인다.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일자집이다. 본래는 초가였으나 새마을사업 당시 시멘트 기와로 지붕을 개수하였다. 부엌 옆으로 2칸의 방이 있고 이어서 건넌방과 그 앞에 마루방이 있는 구조이다.
남부지방의 민가들은 일반적으로 부엌, 방, 대청, 건넌방 순으로 실이 구성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집은 방 수를 늘리며 겹집과 같이 건넌방 전면에 마루방을 만들었다.
방 앞에는 툇마루가 있고 마루방과 건넌방 주위에도 쪽마루를 시설하여 각 실들을 연결하고 있다. 마루방은 사방에 문을 내어 각 공간과 직접 통하도록 하였다.
부엌은 근래에 입식부엌으로 개조되었다. 이때 부엌 한쪽에 욕실을 만들었고, 집 뒤 처마 밑에는 보일러실을 냈다. 부엌과 안방 사이 벽에는 현재 두짝 미서기문이 있으나 본래는 그 문 뒤쪽에 작은 문이 있었다.
사랑채는 안채보다 낮게 외벌대 기단 위에 세워져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며 안채와 같이 일자집이다. 간살의 구성을 보면 동쪽에서부터 대문간과 사랑대청이 앞뒤로 배치되고 그 옆에는 2칸의 방이 있는데 앞뒤로 모두 툇마루를 시설하였다. 이어서 부엌과 방이 겹집과 같이 두 줄로 배치된다.
이와 같은 평면의 겹집화 현상은 조선 후기에 자영농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공간의 확대에 따른 일반적 경향이다. 채가 분화되는 것보다 경제적이며 보다 쉽게 넓은 공간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대청은 툇마루보다 바닥을 10㎝ 정도 높게 하여 공간을 구획하였다. 높이 차가 미약하여 누마루의 공간감을 느낄 수 없지만 낮은 담 너머로 당산나무 등이 보인다. 5량구조로서 본래 초가였으나 안채와 같이 시멘트기와로 개수되어 지금은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다. 곳간채는 3칸×2칸의 규모이다.
처마 끝은 사랑채와 맞닿아 있지만 평면은 한 칸 정도 떨어져 있어 이곳에 사랑마당으로 통하는 쪽문을 냈다. 3칸 중 한 칸은 전면을 터서 헛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두 칸은 마루를 깔고 곡식과 항아리 등을 보관하였다. 남부지방의 소박한 민가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