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기 (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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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기 / 흰무리
백설기 / 흰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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멥쌀가루를 고물이 없이 시루에 안쳐 쪄낸 떡.
이칭
이칭
흰무리, 설병, 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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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멥쌀가루를 고물이 없이 시루에 안쳐 쪄낸 떡.
내용

흰무리라고도 한다. 백설기는 말 그대로 멥쌀가루를 하얗게 쪄낸 떡이다. 티없이 깨끗하고 신성한 음식이라는 뜻에서 어린이의 삼칠일·백일·첫돌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쓰이고 사찰에서 재를 올릴 때 또는 산신제·용왕제 등 토속적인 의례에 많이 쓰인다.

설기떡은 김해나 웅천 등지에서 출토된 시루, 안악고분벽화의 시루에다 무엇인가를 찌고 있는 아낙네, 무문토기시대의 유물인 제분용 연석 등으로 미루어, 1∼2세기경부터 존재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삼국유사』 효소왕대죽지랑조에 설병(舌餠)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음이 설고(雪餻)와 비슷한 점을 들어 이 설병을 백설기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백설기에 관한 중국 기록은 남송 말기의 『무림구사(武林舊事)』에 설고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있으므로 백설기에 관한 기록은 중국보다 앞섰다고 할 수 있다.

이색(李穡)은 『목은집(牧隱集)』 속의 「영설고(詠雪餻)」에서 설기떡을 절찬하였고 『지봉유설』에 고려에서는 쑥설기떡을 음식물의 으뜸으로 삼는다고 한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는 설기떡이 완전히 뿌리를 내린 시대라 할 수 있다.

17세기경에는 음식의 재료뿐 아니라 만드는 방법까지를 적은 여러 조리서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설기라는 이름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만 나오고, 『규곤시의방(閨壼是議方)』에는 밤설기,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막우설기가 기록되어 있다.

조리서에 고려시대에 뿌리를 내렸던 설기떡에 관한 기록이 적은 이유는 설기떡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쇠퇴된 것이 아니라 식품 이름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하였기 때문이라고 하겠다. 지금도 백설기는 거의 모든 행사에 사용되고 있으며 지역이나 계절에 상관없이 만들어 먹는 가장 대중적인 떡이다.

참고문헌

『고려이전한국식생활사연구(高麗以前韓國食生活史硏究)』(이성우, 향문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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