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경상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수로연변(水路沿邊)의 조창(漕倉)과 해운(海運)을 수호하고 역병(疫病)의 퇴치를 위하여 마을의 여러 곳에 석장승을 세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화강석을 조각한 높이 1.2m, 너비 50㎝, 두께 30㎝의 석장승 2개와 높이 80㎝, 너비 30㎝, 두께 20㎝의 석장승 6개 등 모두 8개가 마을 입구와 제장(祭場)에 서 있다.
형태는 관복을 입고 손에 홀(笏)을 쥐었으며 남장승은 관모 같은 사모(紗帽)를 쓰고, 여장승은 머리 위쪽에 뿔 같은 모양이 있는 등 능묘(陵墓)의 무인 · 문인석과 비슷한 모습으로, 한 곳에 남녀 2쌍씩을 세웠다.
이 곳 주민들에 따르면 조선시대 경상남도 서부지역 7개 군현의 공물(貢物)을 모두 가산창(駕山倉)에 모아 해로를 통하여 중앙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 때 이곳에 있던 조당(租堂)에 현감들이 모여 공물이 중앙에 무사히 안착하기를 비는 제사를 올리고 조창을 수호하기 위하여 이들 석장승을 세웠다고 전한다.
요즈음 석장승에 지내는 제사는 동제 성격으로, 1년에 한 번 음력 1월 1일 새벽 1시에 지낸다. 제관은 동민이 윤번제로 하나 흉(凶)이나 상(喪)을 당한 자는 제외한다.
제물은 돼지머리 · 고사리 · 콩나물 · 단술 등인데, 제사가 끝난 뒤 돼지머리는 땅에 묻고 제사 하루 뒤 오광대놀이를 한다. 제사의 비용은 동네 계에서 조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