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일행이 관서지방을 통과할 때 그들에게 진정서를 제출하고 선천역과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우리 겨레의 독립에 대한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려 하였으나 시기를 놓쳐 실패하였다.
다음달인 9월 1일 오전 3시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져 유리창과 담벽을 파괴하고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명의로 친일관리에 대한 경고와 재산가의 군자금 납부를 촉구하는 격문을 살포하였다.
이 사건으로 붙잡혀 1921년 4월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0년을 언도받았으며, 이때 박치의(朴治毅)는 사형을, 다른 동지 14명은 유기징역을 언도받았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