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촌

  • 역사
  • 인물
  • 개항기
  • 현대
대한제국기 때, 정용기의 산남창의진에서 우포장으로 활동한 의병.
이칭
  • 이칭백남신(白南信), 백영근(白永根)
인물/근현대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1882년(고종 19)
  • 사망 연도1964년
  • 본관수원(水原)
  • 출생지경상북도 영일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성수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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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제국기 때, 정용기의 산남창의진에서 우포장으로 활동한 의병.

개설

본관은 수원(水原). 별명은 백남신(白南信)·백영근(白永根). 경상북도 영일 출신. 백상목(白相穆)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최만년(崔晩年)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06년 3월 정환직(鄭煥直)의 명으로 정용기(鄭鏞基)가 영천에서 이한구(李韓久)·정순기(鄭純己)·손영각(孫永珏) 등과 의병을 일으켜 산남창의진(山南倡義陣)을 구성하였을 때 그 휘하에 들어가 우포장(右砲將)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계획이 실행되기에 앞서 의병장 정용기가 관군에 붙잡히자 청하와 경주 등지를 공격하는 등 소극적인 의병활동을 하였다. 그뒤 정용기가 출옥하여 1907년 4월 다시 산남의진을 형성할 때 소포장을 맡아 영덕에서 적군 수십명을 사살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

그해 9월 입암전투(立巖戰鬪)에서 의병장 정용기가 순국한 뒤 정환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좌익장(左翼將)에 임명되어 영덕에 두 차례 잠입하여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뒤 군자금 모금에 주력하여 1908년 7월 청하군 죽남면의 김재정(金載貞)에게 군자금을 강요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11년 7월에 일제에 의해 소위 강도 살인 및 구타 등의 죄로 대구지방법원에서 7년형을 언도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18년 9월 만기출옥한 뒤 일본경찰의 감시하에서도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 - 『산남창의지(山南倡義誌)』

  • - 『산남의진유사(山南義陣遺史)』

  • - 『독립유공자공훈록』1(독립유공자공훈록편찬위원회, 1986)

  • - 『대한민국독립유공인물록』(국가보훈처, 1997)

  • - 『독립운동사자료집』 3(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 - 『한국독립사』(김승학, 독립문화사,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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