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와 발간연대를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고려 성종 3년(984)에 일본인 단파(丹波康頼)가 편술한 『의심방(醫心方)』에 그 방문이 두 곳이나 인용되어 있다. 그 중의 하나는 그의 증손(曾孫)인, 단파(丹波雅忠)의 『의략초(醫略抄)』에 전재되어 있는데, 그 방문은 치폐옹방(治肺癰方)과 치정종방(治丁腫方)이다.
제1방의 치폐옹방은 황기(黃耆)를 불에 달여서 복용하는 것이다. 방문의 끝에 본 방과 같다고 적혀 있는 갈씨방(葛氏方)은 동진(東晉) 함화(咸和) 326∼334년경에 갈홍(葛洪)이 저술한 『갈씨주후방 葛氏肘后方』을 약(略)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제2방의 치정종방은 국엽(菊葉)을 그 줄기와 함께 두드려 즙을 세 되쯤 되게 하여 단번에 복용하는 것이다. 송대(宋代)의 『경사증류대전본초 經史證類大全本草』 권6의 국화(菊花)의 조에 『갈씨주후방』을 인용하며 “종기를 치료할 때는 국화잎 한 줌을 두드려서 짜낸 즙 한 되를 마시면 즉시 낫는다(治丁腫, 垂死, 菊葉-握, 搗絞汁-升, 入口, 卽治).”라고 적혀 있으니 본 방문도 역시 『갈씨주후방』에 의거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제1방에 있는 황기는 한방의 최초 본초서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 이미 기재되어 있고 그 치방에 있어서도 옹종(癰腫:종기)·저창(疽瘡:등장. 등에 나는 부스럼)에 적용되어 있어 그 치법이 『백제신집방』의 치폐옹방과 거의 일치된다.
제2방의 국엽은 『신농본초경』에는 수록되지 않고 다만 국화만 기재되어 있다. 남조시대(南朝時代)의 도홍경(陶弘景)의 『명의별록(名醫別錄)』에는 국엽의 채취방법이 적혀 있을 뿐 아니라 정종에 대한 치방도 갈홍의 주후방과 거의 같게 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백제신집방』에 사용된 두 약초는 중국의 고대 본초서에 이미 보이며, 그 응용방법도 거의 일치된다. 그러므로 『백제신집방』은 중국 한방의학이 이미 성숙기에 달하게 되었던 삼국시대 후기에 성립된 것이라 짐작되며, 중국의약과의 교류관계에 있어서 백제는 지역적으로 중국과 서남해역을 격한 남조시대의 『갈씨주후방』이나 『신농본초경』과 『명의별록』 등 의방서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백제가 중국으로부터 수입한 의방서에만 의존하지 않고 『백제신집방』 같은 독자적 의방서를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그 당시의 백제의학이 단순히 한의방의 수용에 만족하지 않고 그 지식을 종합, 정리하여 점점 자주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