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진평왕 대에 원효대사가 왕명에 의해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동경잡기』에 수록된 이 기록은 신라 당시 기록이 아니며, 진평왕이 원효로 하여금 법광사 2층 불전을 창건케 했다는 기록은 진평왕 재위 기간(579년∼632년)과 원효(617년~686년)의 사망 연대를 고려했을 때 당시 원효의 나이가 매우 어리기 때문에 신빙성이 낮다. 법광사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탑지석에 따르면 828년(흥덕왕 2)에 탑을 건립했고 846(문성왕 8)년에 이건하면서 사리 22과를 납탑했다고 하므로 828년에 법광사가 창건된 것일 수도 있고, 이때 중창됐을 수도 있다. 다만 최근 법광사지 발굴 조사 중간 보고에 따르면(2019년) 고식 수막새가 출토되어 삼국시대에 창건됐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828년 석탑을 중수할 때 참여한 단월의 성격은 2가지 가능성이 제시됐다. 헌안왕의 아버지로 성덕대왕(成德大王)으로 추봉된 김균정이 단월이었다는 견해와, 김균정을 추모하기 위한 관사인 성덕대왕전이 주도해 석탑을 이건했고, 이때 성덕대왕전에 소속된 향순과 원적이 재물을 희사했다는 견해이다. 두 가지 해석의 차이는 있으나 법광사는 김균정 가문의 원찰이었다고 파악된다.
고려시대 기록은 전하지 않지만, 발굴 조사 결과 고려시대에도 중창이 이루어졌다고 파악된다. 그리고 조선시대인 1698(숙종 24)년과 1747(영조 23)년에 각각 석탑을 중수했다. 1750년에는 석탑 뒤에 그간의 정황을 적은 석가불사리탑중수비를 건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