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사물이 각기 고유한 본체와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생겨나는 집착이다. 이 집착은 성문(聲聞)과 연각(緣覺) 등 소승(小乘)의 수행 경지에 도달한 사람들이 일으키게 된다.
석가모니가 처음 제자들을 가르칠 때 그들의 경지가 미숙하다는 것을 느끼고, 단지 ‘나’라는 것은 집착할 것이 못되는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모든 애착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를 잘못 해석하여 아집(我執)은 버리되 법에는 오히려 집착하는 경우가 많았다.
성문과 연각의 제자들은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다섯 가지 인간의 구성요소들이 다 좋지 않은 실체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이들 다섯 가지를 반드시 경험해야만 되는 생사(生死)를 싫어하여 열반(涅槃)을 쟁취하기 위해서 서두르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생사에 대한 집착, 열반에 대한 집착, 색·수·상·행·식의 하나하나가 모두 실재한다는 그릇된 고집 속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부처님은 법집을 버릴 것을 다시 강조하였다.
법집을 어떻게 제거하여야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신라의 원효(元曉)는 먼저 색·수·상·행·식의 다섯 가지 요소는 모두가 인연 따라 생긴 것으로서, 항구불변하고 자주자립적인 실제가 아님을 밝혔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굳이 없애야만 할 고유한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제거하겠다는 생각조차 놓아버릴 때 자연히 법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깨닫게 되면 본래가 그대로 열반이므로 따로 이 열반을 얻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보았다.
다만, 법집을 없애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해서 선과 악, 부정과 정직 등의 상대적인 현상이나 판단을 절대적인 것인 양 고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며, 모든 객관적인 사물을 여러 가지 이기적인 생각으로 분별하고 인식하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동요가 심해져 참다운 지혜를 가리게 되므로 이기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법집을 없앨 것을 강조하는 까닭은 그릇된 집착을 떠나게 될 때 자연히 참되고 한결같은 본성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