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합천 해인사 박물관에 보관. 19세기 작.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135㎝, 가로 85㎝. 1997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지리산 벽송사는 해인사 말사(末寺)이며 그 창건 연대는 1520년(중종 15년)으로 전해진다. 이 영정의 농채(濃彩 : 진하고 강하게 쓰는 채색)된 배경에는 세 곳에 명문이 있다.
“傳佛心臨濟宗太古下五世碧松堂智儼之眞(전불심임제종태고하오세벽송당지엄지진)”의 영정명(影幀名)과 휴정(休靜)의 찬문(撰文) 및 후대에 쓴 묵서(墨書) ‘天順甲申三月十五日出生/扶安宋氏/嘉靖甲午十一月一日辰時端坐入寂(천순갑신삼월십오일출생/부안송씨/가정갑오십일월일일진시단좌입적)’가 있다.
지엄은 서산 대사 휴정(1520∼1604년)의 직계 스승이다. 법손(法孫) 휴정의 찬문이 있으나 영정의 양식으로 미루어 19세기에 옮겨 그려진 것 같다. 벽송사의 개창주이자 조선 불교 임제종 제5대 정통(正統)을 지낸 조선 초기의 고승인 지엄의 영정은 의자에 앉은 측면 전신상이다. 오른손은 의자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고, 왼손에 불자(拂子)를 들고 있다.
엄숙한 스님상은 연녹색 장삼에 붉은 가사가 잘 어울리는 색상 조화로 인해 활력 있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금제(金製) 용두(龍頭) 장식의 불자 및 등받이 천의 가장자리를 장식한 화문(花文), 가사를 묶는 연결 끈, 가죽신 등에서 화려함이 돋보인다. 반면 장식이 배제된 의자는 자로 잰 듯한 직선을 이용한 단순함이 보이지만 팔걸이나 등받침의 좌우 횡목의 끝을 여의두(如意頭) 모양으로 변화를 주었다.
자잘한 무늬의 돗자리가 깔린 바닥과 녹색 계열의 배경색은 배면(背面)이 벽면과 바닥으로 나뉘는 2단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덕(德) 높은 고승의 표정을 잘 묘사한 지엄 영정은 안정감 있는 구도나 인물의 형태 · 필선 · 채색 · 장식 등에서 19세기 불화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