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병조참지, 온성부사, 충청도·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이칭
  • 이칭변수(邊脩)
인물/전통 인물
  • 본관원주(原州)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최완기 (서울시립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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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참지, 온성부사, 충청도·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공신.

개설

본관은 원주(原州). 이름이 변수(邊脩)로 되어 있는 기록도 많은데, 동일인물로 보인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변방의 여러 무관을 역임하고 1479년(성종 10) 병조참지에 올랐다. 이어 특별히 승정원으로 옮겨 동부승지를 제수받고, 곧이어 좌부승지를 거쳐 좌승지로 승진하였는데, 한명회(韓明澮)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불명죄로 직첩(職牒: 관직의 임명사령장)이 환수되었다가 곧 환급되었다.

그 뒤 형조참의·병조참지를 거쳐 경상우도수군처치사(慶尙右道水軍處置使)로 나갔다가 1489년 충청도수군절도사를 거쳐 경상우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자격이 부족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온성부사(穩城府使)로 좌천되었다.

그러자 타도 전임을 요구하였다가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 그 뒤 불평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1506년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키자 여기에 가담하여 역군(役軍)들을 모아 거사를 성공시키고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원천군(原川君)에 봉해졌다.

1511년(중종 6)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 뒤 충청도와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513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성품이 탐오하여 대간으로부터 자주 탄핵을 받았다.

참고문헌

  • - 『성종실록(成宗實錄)』

  • -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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