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원주(原州). 이름이 변수(邊脩)로 되어 있는 기록도 많은데, 동일인물로 보인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변방의 여러 무관을 역임하고 1479년(성종 10) 병조참지에 올랐다. 이어 특별히 승정원으로 옮겨 동부승지를 제수받고, 곧이어 좌부승지를 거쳐 좌승지로 승진하였는데, 한명회(韓明澮)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불명죄로 직첩(職牒: 관직의 임명사령장)이 환수되었다가 곧 환급되었다.
그 뒤 형조참의·병조참지를 거쳐 경상우도수군처치사(慶尙右道水軍處置使)로 나갔다가 1489년 충청도수군절도사를 거쳐 경상우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자격이 부족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온성부사(穩城府使)로 좌천되었다.
그러자 타도 전임을 요구하였다가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 그 뒤 불평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1506년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키자 여기에 가담하여 역군(役軍)들을 모아 거사를 성공시키고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원천군(原川君)에 봉해졌다.
1511년(중종 6)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 뒤 충청도와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513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성품이 탐오하여 대간으로부터 자주 탄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