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수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병조참지, 온성부사, 충청도 ·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 공신.
이칭
이칭
변수(邊脩)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원주(原州)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병조참지, 온성부사, 충청도 ·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 공신.
개설

본관은 원주(原州). 이름이 변수(邊脩)로 되어 있는 기록도 많은데, 동일인물로 보인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변방의 여러 무관을 역임하고 1479년(성종 10) 병조참지에 올랐다. 이어 특별히 승정원으로 옮겨 동부승지를 제수받고, 곧이어 좌부승지를 거쳐 좌승지로 승진하였는데, 한명회(韓明澮)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불명죄로 직첩(職牒: 관직의 임명사령장)이 환수되었다가 곧 환급되었다.

그 뒤 형조참의·병조참지를 거쳐 경상우도수군처치사(慶尙右道水軍處置使)로 나갔다가 1489년 충청도수군절도사를 거쳐 경상우도수군절도사가 되었다. 연산군이 즉위한 뒤 함경도병마절도사가 되었으나, 자격이 부족하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온성부사(穩城府使)로 좌천되었다.

그러자 타도 전임을 요구하였다가 연산군의 노여움을 사서 파직되었다. 그 뒤 불평으로 세월을 보내다가 1506년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이 중종반정을 일으키자 여기에 가담하여 역군(役軍)들을 모아 거사를 성공시키고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원천군(原川君)에 봉해졌다.

1511년(중종 6)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그 뒤 충청도와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1513년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성품이 탐오하여 대간으로부터 자주 탄핵을 받았다.

참고문헌

『성종실록(成宗實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