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허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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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허자 / 당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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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때 들어온 당악(우리 나라 궁중음악 중 중국에서 들어온 당 · 송의 속악) 중의 하나.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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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춘불로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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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 때 들어온 당악(우리 나라 궁중음악 중 중국에서 들어온 당 · 송의 속악) 중의 하나.
내용

고려 때 들어온 당악(우리 나라 궁중음악 중 중국에서 들어온 당·송의 속악) 중의 하나.

<장춘불로지곡 長春不老之曲> 등의 딴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나, 이러한 이름은 조선 말기 진연(進宴: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궁중에서 베풀던 잔치)이 있을 때마다 임시로 지어서 쓴 것이기 때문에 많은 다른 이름이 있다.

<보허자>는 ≪고려사≫ 악지 당악조에 소개된 당악곡 43편 중에는 들어 있지 않고, 당악정재(唐樂呈才:송나라에서 들어온 궁중무용)의 하나인 <오양선 五羊仙>을 춤추다가 부르는 창사(唱詞)로 그 가사와 함께 전해온다.

가사는 미전사(尾前詞:前段)와 미후사(尾後詞:後段)의 2단으로 되어 있다. 음악 형식은 전단인 미전사(A·B)를 부르고 후단인 미후사를 부를 때는 미후사의 첫 구의 가락만 미전사 첫 구의 가락과 다르게 부르고(C), 둘째 구 이하는 미전사 둘째 구 이하의 가락을 반복한다(B). 이와 같이 A·B·C·B의 부분, 즉 미후사의 첫째 구를 환두(換頭)라 하고 미후사의 B부분을 환입(還入)이라고 한다.

이러한 형식은 송나라에서 들어온 사악(詞樂)의 특징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서는 당악이 점차 도태되고, 겨우 <보허자>·<낙양춘 洛陽春> 두 곡만이 전승되었으나, 이 두 곡도 향악화(鄕樂化)되기 시작하여 원래의 형식과 음악적 특징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향악화 과정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1) 대악후보(大樂後譜)

≪대악후보≫에 전하는 <보허자>는 미전사와 미후사의 가사와 환두가락에 의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음역(音域)은 당악기 음역인 한 옥타브 반이고, 거문고의 특징인 문현(文絃:거문고의 제1현)과 청현(淸絃:향비파의 제2현)의 용법이 없다. 이런 점에서 ≪대악후보≫의 <보허자>는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겠다.

(2) 금합자보(琴合字譜)

≪금합자보≫는 안상(安瑺)이 1572년(선조 5)에 편집한 거문고 악보이다. 이 시기의 음악은 성종 이전의 경안법(輕按法:거문고나 해금 연주 때 줄을 가볍게 짚어 연주하는 법)에서 역안법(力按法:거문고에서는 줄을 밀어 짚고, 해금에서는 줄을 당기어 짚는 연주법)으로 그 연주법이 바뀌면서 자유자재한 농현법(弄絃法:현악기 연주 때 본래 음 이외에 여러 가지 꾸밈음을 비롯하여 미묘한 떨림소리를 내는 기법)의 발전으로 모든 향악이 표현력을 가진 음악으로 전환한 때였다. 당악곡인 <보허자>도 이 시기에 와서 향악화 과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① 지입(指入):즉 미전사의 가락과 미후사의 환두가락만 남고 둘째구 이하 환입가락은 생략되었다. ② 적보(笛譜)는 하오(下五)에서 상이(上二)까지 원래의 당악기 음역을 유지하고 있는 데 반하여 거문고는 음역이 넓어져서 두 옥타브에 이른다. ③ 아직 장별(章別)은 없고, 거문고 연주법의 특징인 문현과 청현의 용법이 가미된다.

④ 거문고의 연주법은 줄을 가볍게 짚고 타던 경안법에서 줄을 밀어서 타는 역안법으로 바뀐다. 따라서, 농현법·퇴성법(退聲法)·전성법(轉聲法) 등이 가능하게 되어 표현력을 가지는 음으로 전환, 발전하게 되었다.

(3) 신증금보(新證琴譜)

숙종 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신증금보≫는 신성(申晟)이 편집한 악보로 전한다. 이 거문고 악보는 많은 변화를 보여주고 있으나, 부자연스럽고 무리한 점이 많이 눈에 뜨인다. ① 미전사와 미후사가 모두 전한다. ② 가사 붙임에 잘못된 점이 너무 많은데, 이런 현상은 가사 부르는 법을 상실해가고 있기 때문이라 하겠다. ③ 거문고 연주법에서 청(淸)이 나오는 자리를 단락으로 장(章)의 구분이 시도되고 있으나 불합리하다.

④ 음역이 넓어지고 가락이 ≪금합자보≫보다 복잡해진다. ⑤ 문현 용법을 도입하되, 한장마다 규칙적으로 첫박과 중간박에 두 번씩 사용한다. ⑥ 농현법을 쓰고 있다. ⑦ 환입가락 끝에다가 또 환두가락을 덧붙이고 있다. 이와 같이 환입가락 끝에 환두가락을 첨가한 것이 후대의 <밑도들이 尾還入>로 변주되는 틀이 된다.

(4) 한금신보(韓琴新譜) 영조시대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한금신보≫에서는 <보허자>의 가사가 완전히 탈락하고, 여러 가지 변화를 주어 다음과 같은 파생곡이 생긴다. ① ≪한금신보≫의 <보허자>는 원래의 미전사 가락에 환두가락까지로 되어 있다. 이것은 현행 거문고·가야금 등 현악기로만 연주되는 <보허사 步虛詞>와 같다. ② <보허자본환입 步虛子本還入>은 원래의 <보허자> 2장 일곱번째 장단(환입부분) 이하의 가락을 변주한 것으로서, 현재의 <밑도들이>에 해당한다.

③ <보허자삭환입 步虛子數還入>은 <보허자본환입>의 변화곡으로 현행 <웃도들이 細還入>에 해당한다. ④ <보허자제지 步虛子除指>는 ‘보허자 가락덜이’라는 뜻으로 이 악보를 해독하면, 현행 <우조가락도들이 羽調加樂還入>에 해당한다. ⑤ 이상 ≪한금신보≫의 <보허자본환입>·<보허자삭환입>·<보허자제지>는 원곡인 <보허자> 장단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 가락과 속도만 달라진 곡들이다.

이 곡들이 <보허자> 장단에서 벗어나 현행 장단으로 변주된 것은 순조 때의 ≪유예지 遊藝志≫ 이후이다. 그 뒤 고종 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삼죽금보 三竹琴譜≫에 이르러서는 <양청환입 兩淸還入>이 파생되는데, <양청환입>은 <웃도들이>를 변주한 곡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허자>는 원래 장별이 없었으며 1572년에 간행된 ≪금합자보≫에도 없었다. 그 뒤 숙종 무렵의 ≪신증금보≫에 이르러 장별이 시도되었으나 불분명하고, 영조 무렵의 ≪한금신보≫에도 장의 구분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보허자>를 7장으로 구분한 것은 조선 말기에 속하는 ≪속악원보 俗樂源譜≫ 지편(智篇)과 신편(信篇), ≪유예지≫ 시기부터이다. 현행 <보허사>(絃樂 步虛子)의 1·2·3·4장은 느린 속도로 연주되고, 5·6·7장은 빠른 속도로 연주된다.

그런데 ≪대악후보≫는 물론 ≪금합자보≫·≪신증금보≫ 등 영조 이전의 <보허자>에서는 중간에 속도가 변하는 요소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5장 이하에서 빨라지는 연주법은 ≪한금신보≫ 이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관악기 중심의 <보허자>는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속악원보≫의 <보허자> 7장 가운데에서 1·3·4장만이 전해온 것이다.

조선시대 궁중의 연회에서 불렸던 악장(樂章)의 하나로 세종 때 처음 악장의 가사로 확정되었고, 세조 때 다시 일부를 고쳤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고려 때부터 당악정재인 <오양선> 등에 보허자령(步虛子令)이라는 악곡의 가사로 ‘벽연농효사(碧烟籠曉詞)’라는 제목 아래 불렸다.

한문 가사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푸른 안개 새벽하늘에 자옥한데/바다 물결 한가롭고 강가의 몇 봉우리는 서늘해라/패환(佩環)소리 속에서 기이한 향기 인간세상에 떨어지는데/오색구름 끝에선 강절(絳節) 멈추네/한데 어우러져 이삭 패인 좋은 벼의 상서 가리키고 한차례 웃어 붉은 웃음 띄워보네/구중 높은 궁궐 바라보며 하늘 향해 세 차례 축수하기를/만만년 두고두고 남산 맞보고 솟아 있을지라.”

이처럼 유선(遊仙)의 황홀경을 묘사한 뒤, 이어 대궐을 향하여 송축하여, 태평시절의 즐거움과 또한 임금의 장생불로를 축원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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