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말 해외에서의 독립운동이 공화주의로 나아가게 되자, 의병에 가담한 뒤 북간도로 망명한 김이수(金二洙) 등 20여 명의 유림 출신 독립투사들이 황제를 위하여 목숨을 내걸 것과 조국의 독립쟁취를 목표로 하여 조직하였다.
혼춘(琿春)지방을 중심으로 군자금을 모금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내는 한편, 소련으로부터 신식무기를 조달해서 무장, 일본군대와 10여회 교전하였다.
그러나 단원들은 전술전략의 미숙으로 인하여 일본군대에 쫓겨 중국과 시베리아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는 활동이 없는 것으로 보아 소멸된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