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문서 · 도면 · 사진 따위를 같은 크기로 또는 확대, 축소하여 간단하고 빠르게 복제하는 기계.
연원
변천 및 현황
RICOPY 555를 가장 먼저 산 곳은 서울시청이었다. 1962년 2월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면서 해마다 호적 사무 업무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던 터라, 복사기는 사무 현장에 도입되자마자 업무에 필수 불가결인 기기로 자리 잡았다. 1970년대까지 국내 복사기 생산량의 상당량을 정부 행정기관이 소화하였다. 그 본격적인 전환점이 된 때는 국내 최초의 전자식[EF] 복사기인 신도리코 BS-1이 1969년에 출시되면서부터다. 이 모델은 5·16군사쿠데타 이후 한글 타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일선 행정 관서까지 대량으로 납품되었다.
1970년대 초부터 중소기업이나 개인을 위한 소용량 복사기에 대한 수요는 서서히 증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유지했던 제록스는 대기업과 정부 기관을 목표로 초고속 대용량 모델 판매에 집중하였고, 경쟁사가 쉽게 끼어들 수 없는 독점 구조를 유지하려 하였다. 하지만 1972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제록스를 고발하였다. 시장 독점을 위해 특허권을 남용하고 있다는 혐의였다. 수년 간의 조사 끝에 제록스는 결국 FTC의 합의 명령에 굴복해 다른 경쟁사들이 자신의 특허권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진행 중이던 특허침해 소송까지 1975년에 모두 포기하였다.
특허권을 앞세운 제록스의 압제에서 벗어나자마자 리코와 캐논은 공격적으로 소형 복사기 제품군을 시장에 내놓았다. 일반인들이 저렴하게 구매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복사기가 대중적 생활 배치 속에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복사기 업계의 새로운 판도는 일본 업체와 제휴 협력 관계에 있던 국내 시장에서 큰 시간차 없이 그대로 수용되었다.
1980년대의 온갖 정치 유인물의 증식과 공유에 복사기는 매우 유용한 도구였다. 1980년대의 복사기는 동시대에 병행되었던 초고속 대량 인쇄 중심의 오프셋인쇄, 마스터인쇄와 역할을 배분하면서, 인쇄 기술을 대중의 일상적 행동 능력의 범주로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 임태훈, 『우애의 미디올로지』(갈무리, 2012)
- Lynn G. Gref, *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Technology*(Algora Publishing, 2010)
- David Owen, *Copies in Seconds: How a Lone Inventor and an Unknown Company Created the Biggest Communication Breakthrough Since Gutenberg- Chester Carlson and the Birth of Xerox*(Simon & Schuster, 2005)
논문
- 이영미, 「카세트테이프, 비디오테이프, 구전, 마당: 1970, 80년대 예술문화운동의 매체들과 그 의미」(『서강인문논총』 35, 서강인문과학연구소, 2012)
신문·잡지 기사
- 천정환, 「1980년대 문학과 매체 환경: 팜플렛과 무크, 그리고 민주혁명」(『문학수첩』 2006년 봄호, 2006)
- 「대학·좌경서적(상) 사상의 편식」(『경향신문』, 1983. 12. 6.)
- 「50개 동사무소에 전자복사기 설치」(『동아일보』, 1975. 2. 20.)
- 「휴대용전기복사기」(『동아일보』, 1937. 10. 13.)
주석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