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한문필사본. 작자가 동래부사를 지내고 벼슬이 갈리어 서울로 올라오던 해인 1869년(고종 6) 12월에 동래부내의 명승지와 사적지를 두루 구경하고 지은 작품이다. 2음보 1구로 계산하여 전체 117구이다. 음수율은 3·4조가 주조를, 4·4조가 부주조를 이루며, 3·3조가 한번 나온다.
내용은 4단으로 짜여져 있다. 제1단인 서사(序詞)에서는 신선세계를 뜻하는 ‘봉래’라는 지명과 연관시켜 창작동기를 밝혔다.
제2단인 승사(承詞)에서는 장부의 강개(慷慨)를 이기지 못하여 봉래의 승지인 동래부 관아에서 금정산성-범어사-유선대-영가대-초량포-다대진-절영도-태종대 등지를 두루 구경하고 경치를 노래하였다.
제3단인 전사(轉詞)에서는 지은이가 선경을 두루 밟아 구경하였으나, 불사약은 구하지도 못하고 어느 사이에 3년 세월이 꿈처럼 지나버렸다는 느낌을 표출하였으며, 마지막 결사(結詞)에서는 이 좋은 고장을 떠나고 싶지 않으나, 성은을 갚기 위하여 부득이 떠나야만 하니, 봉래의 벗님들은 가는 나를 잡지 말라고 이별의 동기를 담았다.
조선시대 기행가사 중에서 경상도 지방만을 여행하고 지은 가사로는 유일하게 전해지는 작품이다. 작자는 일본과의 국교 그 자체까지 못마땅히 생각하던 인물로, 항왜의식(抗倭意識)을 작품에서 노골적으로 토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