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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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통례원(通禮院)의 정4품 관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성준 (수원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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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통례원(通禮院)의 정4품 관직.

내용

정원은 1인이다. 통례원은 조회(朝會)·의례(儀禮)를 관장하던 관청이었으므로 예관(禮官)에 들어 있었다.

통례원은 고려 때 합문(閤門) 또는 통례문(通禮門)이라 일컫다가, 조선 1392년(태조 1) 7월의 신반관제(新頒官制)에 있어서는 합문이라 하고 판사·겸판사·지사·인진사(引進使)·겸인진사·인진부사·통찬사인(通贊舍人)·봉례랑(奉禮郎)·겸봉례랑을 두었다.

그 뒤 통례문이라 고치고 1405년(태종 5) 3월 육조의 분직(分職) 및 소속을 상정할 때에는 예조에 소속되었고, 1414년 1월에 인진사를 첨지사(僉知事)로 고치고, 1445년(세종 27) 1월에는 첨지사를 부지사(副知事)로 개칭하였다.

1466년(세조 12) 1월 통례문을 통례원으로 승격하고 관제를 『경국대전』과 같이 고치면서 부지사를 봉례로 개칭하였다. 그 뒤 『대전회통』에서는 혁파되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태조실록(太祖實錄)』

  • - 『태종실록(太宗實錄)』

  • - 『세종실록(世宗實錄)』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경국대전(經國大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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