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청마산성 ( )

건축
유적
국가유산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사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축조된 백제 산성.
유적
건립 시기
삼국시대
관련 국가
백제
둘레
9,277m
면적
2,223,618㎡
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산1-1외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63년 1월 21일 지정)
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 산1-1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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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부여 청마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 마을 주변의 오석산, 월명산, 청마산의 능선을 포곡식으로 감싸고 있는 백제 산성이다. 가림성, 석성산성과 함께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성으로 성벽의 둘레가 9,277m이며 백제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사비 도성에서 공주와 논산 방면으로 향하는 주요 교통로상에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사비 도성의 배후 산성으로 천도 이전에 축성되었다.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사비 도성의 방어를 위해 축조된 백제 산성.
위치

부여 청마산성은 부여읍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약 4km 거리에 위치하며, 동나성 밖에 위치하고 있다. 부여 인근에서 확인되는 산성 중 규모가 가장 큰 산성으로 사비 도성과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며, 부여읍 가증리, 송곡리, 용정리, 능산리와 초촌면 신암리에 걸쳐 있다.

형태와 특징

부여 청마산성은 용정리 마을의 깊은 골짜기와 이를 둘러싼 오석산, 월명산, 청마산 능선으로 성벽이 이어지는 포곡식 산성이다. 산성은 성내의 지형이 동고서저형이다. 동벽과 남벽이 만나는 부분은 해발 230m에 가까운 산 정상부 일대에 성벽이 지나지만, 서벽은 평지나 다름없는 해발 50m 이하의 계곡부를 지나고 있다. 그래서 지형적으로 보았을 때 서벽 일대가 주된 출입 통로로 보인다.

발굴 경위 및 결과

부여 청마산성의 성벽과 관련한 발굴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성벽의 둘레도 연구자마다 서로 다르게 본다. 본성과 부속성으로 나누어 보는 견해도 있지만, 2006년에 실시된 정밀 지표 조사에서 9,277m로 계측되었다. 성내 시설물은 문지 10개소, 치 32개소, 작은 규모의 치 4개소, 수구지 17개소, 장대지 5개소, 보루 2개소 등이 있다. 또한 성 내부에는 모두 9개소의 유물 산포지가 있고, 산성의 내외에는 능산리 능안골 고분군 등 14개소의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산성의 성벽은 대부분이 붕괴되었지만 남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서벽과 동벽의 높이는 최대 45m 정도 남아 있고, 너비는 34m 정도이며, 남벽은 최대 7m 높이까지 남아 있다.

성벽의 축성은 지형에 따라 편축식과 협축식이 모두 확인된다. 경사면을 따라 내려오는 구간이나 산의 중턱을 지나는 구간은 대체로 편축식으로 쌓았고, 성내 지형이 평탄한 지형에서는 일부 협축식으로 쌓고 있다. 성벽의 축성 방식은 달라도 성돌을 다듬는 수법이나 쌓는 방법은 유사하게 확인된다. 화강암을 이용하여 48×30㎝, 50×26㎝ 등과 같이 가로:세로가 대체로 2:1 정도 되도록 하여 바른 층 쌓기를 하였다. 그런데 북서 구역의 돌출된 성벽 구간은 부분적으로 가로 110㎝ 이상의 큰 성돌을 사용하여 다른 구간과 다른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성벽 기초 시설은 발굴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전반적인 양상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일부 자연 암반을 통과하는 구간에서는 암반 위를 평평하게 다듬고 그 위에다 성벽을 쌓고 있다. 성벽 체성부의 조성은 토성, 석성, 토석 혼축성 등 다양하게 짐작되고 있고, 일부 구간에서는 판축된 흔적도 확인되었지만, 부여 나성과 유사하게 체성부의 내측은 흙으로 조성하고 외측은 돌로 쌓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부여 청마산성은 남벽의 수구가 잘 남아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부여 청마산성에 수구지는 17개소로 추정되는데 그중 남쪽 성벽의 중간 구간에서 확인된 수구는 성벽이 약간 오목해지는 지점에 위치한다. 바른 층 쌓기 한 성벽의 중앙부에 양옆 판석을 세로로 세우고 그 위에 납작한 덮개돌을 덮었고, 물이 빠져나가는 부분에는 성벽 밖으로 돌출되게 판석을 놓아 만들었다.

성내에는 ‘각씨우물’이라고 전하는 우물터가 있는데 수량이 풍부하며, 그밖에 경룡사(驚龍寺) 터와 의열사(義烈寺) 터 등이 있다.

부여 청마산성은 현재 성벽 추정선을 따라 잡목을 제거하고 일부 탐방로를 정비하였다. 이때 백제 사비기 석실묘 2기를 조사하였고 장대지와 치의 존재를 확인하였다. 장대지로 추정되는 지점에서 백제 토기편 및 고려시대 기와편 등이 확인되었다.

의의 및 평가

부여 청마산성은 부여 부소산성 및 부여 나성과 더불어 사비 도성의 일부분으로 평지성(부소산성을 포함한 왕성+나성)과 배후 산성(청마산성)이 결합된 도성 구조물로 인식되어 왔다. 또한 산성과 인접한 유적인 용정리 사지가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초에 조성되었다는 점과 501년 사비 남쪽에 축성된 부여 가림성과 더불어 도성 외곽 방어선 구축이라는 측면에서 부여 청마산성도 천도 전에 지어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산성의 규모가 다른 백제 산성들과 비교하였을 때 대규모인 점과 사비 도성이 함락되기 전 의자왕이 청마산성이 아닌 웅진성으로 피신한 점, 나당 연합군에 대항하거나 이후 부흥 운동시 거점으로 사용되었다는 기사가 없는 점 등으로 청마산성이 백제 이후에 조성되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참고문헌

단행본

『부여의 문화유적』(『부여군지』 제7권, 부여군지편찬위원회, 2003)
『부여 청마산성 종합학술조사 보고서』(한국전통문화학교 부설 한국전통문화연구소, 2006)
『부여 청마산성-부여 청마산성 정비사업부지 내 문화유적 발굴조사-』(백제문화재연구원, 2019)
『백제 사비성의 성곽』(부여군, 2022)

논문

김정기, 『청마산성과 사비도성제 연구』(세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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