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5장. 목판본. 1636년(인조 14) 그의 외손자인 채형준(蔡亨浚)에 의하여 아우 작(碏)의 시집인 『고옥집(古玉集)』과 합간되었다. 장유(張維)의 서문이 있고, 오숙(吳䎘)의 발이 있다. 이 책은 시 30여 수로 이루어졌다.
『북창집』의 시 「자만(自挽)」은 죽음에 임박해서 지은 시로 작자의 청허하고 고원한 인품이 잘 나타나 있다. 「산거즉사(山居卽事)」에서는 문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도 잘못이고 부귀가 하늘과 같다 해도 헛된 수고이니, 산창의 적막한 방에 분향하고 묵묵히 앉아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이 제일이라는 심회를 읊었다.
「영백로(詠白鷺)」에서는 깨끗한 모습으로 물가에 서 있는 백로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어진 일이 아니라고 촌동(村童)의 무심한 행위를 탄식하고 있다.
「요양객관작(遼陽客館作)」은 허목(許穆)의 『기언(記言)』에 정렴이 14세에 중국에 갔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관동마상작(關東馬上作)」·「관동무송정(關東茂松亭)」·「지일득관동안사기인삼(至日得關東按使寄人蔘)」·「연광정하범주(練光亭下泛舟)」·「자부벽루마상주악야입성(自浮碧樓馬上奏樂夜入城)」 등은 관동·평양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 심회를 읊은 작품이다.
『북창집』의 「방가행시아(放歌行示兒)」·「자술(自述)」·「주과저자도향봉은사시(舟過楮子島向奉恩寺詩)」·「영만국(詠晩菊)」 등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북창집』은 정념이 남긴 작품 가운데에 현전하는 얼마 안 되는 분량이지만 편편이 저자의 방외인적 삶과 사상을 반영하고 있어 하나같이 주옥과 같은 것들이다. 따라서, 이 시들은 전혀 속세의 뜻이 없고, 밝고 시원하여 신선의 기풍이 있어 일반적인 유가의 문인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작품들이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도서에 있다. 1985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나온 『이조명현집』에 영인,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