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도자기 중에서는 분청사기(粉靑沙器)에서 그 특색이 뚜렷하다. 이 때 사용되는 백토는 화장토(化粧土)라고도 불리며, 피복력이 좋고 건조시 기물에 잘 밀착해서 구워 만든 뒤에도 안정되게 부착되어야 하므로, 천연의 점토에 장석 · 석회석 등 융제를 첨가하여 소성 뒤에 알맞게 소고(燒固)되도록 조정하여 사용한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이전의 화북지방의 도기(陶器) · 자기(磁器)에 흔히 사용되었고 화남지방에서는 후난성[湖南省] 장사요(長沙窯) 청자에 일부 사용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시대의 일부 청자와 철채청자(鐵彩靑磁)에서 분장기법이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 중 철채청자는 성형된 기물의 전면에 자토(赭土, 黑土) 또는 철분이 함유된 물질을 도장(塗裝)한 뒤 유약을 입혀 구워 만든 것이므로 분장기법의 최초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분장은 조선조 분청사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여러 가지 분장기법이 크게 발전하였다.
분청사기는 그 장식기법에 따라 상감분청사기(象嵌粉靑沙器) · 인화분청사기(印花粉靑沙器) · 박지분청사기(剝地粉靑沙器) · 조화분청사기(彫花粉靑沙器) · 철화분청사기(鐵畫粉靑沙器) 등으로 분류된다.
또 단순히 백토를 분장함으로써 장식이 끝나는 경우가 있으며, 귀얄로 분장된 것은 귀얄문, 백토를 묽게 한 것에 그릇을 덤벙 담가 도장한 것은 분장문 또는 덤벙문이라 한다.
상감 · 인화 등의 분장법은 타작한 청자상감의 기법을 이어 조선초로부터 시작되어 세종 · 세조 연간에 그 특징이 두드러지며, 귀얄문 · 분장문(덤벙문)을 기본으로 하는 박지 · 조화 · 철화문은 세종 · 세조 연간으로부터 세련되기 시작하여 성종 · 중종 연간까지 그 특징이 두드러지고, 단순한 귀얄문과 분장문도 16세기 이후에야 대량생산된다.
단순한 귀얄문과 분장문이 급증하고 여기에 문양을 나타낸 것은 격감하였으며, 표면이 백자와 같이 됨에 따라 자연히 분장에 의한 백자화의 기법은 사라지고, 백자 일색이 되었는데, 이 시기는 대체로 16세기 후반부터이다.
인화문은 영남에서 더욱 발달하였으며 귀얄문 · 분장문을 기본으로 하는 박지문 · 조화문은 호남에서, 철화문은 충청도의 계룡산 지역에서 특히 발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