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나라를 다시 찾을 생각에 골몰하고 있던 한용운(韓龍雲)이 동지 백용성(白龍城) 등 10여 명과 함께 조직하였다. 단장에는 한용운, 그외 간부에는 백용성 등 5명이 선출되었다. 그들은 결의문을 통하여 조국의 광복과 불교의 혁신을 위하여 공헌할 것을 표방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와 탄압으로 표면적으로 더 이상 이끌어갈 수 없어서 본부를 백담사(百潭寺)로 옮긴 뒤,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하면서 불교의 대중화운동과 신앙을 통한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3·1운동 때 이들이 민족대표로 나선 것도 이러한 민족운동이 크게 실효를 거두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