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백제의 접경지역의 요충지인데, 오늘날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광개토왕릉비』에 의하면 407년(광개토대왕 17)광개토대왕이 파견한 군대에 의하여 공파(攻破)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417년(전지왕 13)에 동북 2부(部)의 민을 동원하여 쌓았다는 사구성(沙口城)과 같은 성으로 보는 설이 있다. 즉 『광개토왕릉비』의 이해 작전을 대백제전으로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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