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구성 ()

목차
고대사
지명
삼국시대의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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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삼국시대의 지명.
내용

고구려와 백제의 접경지역의 요충지인데, 오늘날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광개토왕릉비』에 의하면 407년(광개토대왕 17)광개토대왕이 파견한 군대에 의하여 공파(攻破)되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417년(전지왕 13)에 동북 2부(部)의 민을 동원하여 쌓았다는 사구성(沙口城)과 같은 성으로 보는 설이 있다. 즉 『광개토왕릉비』의 이해 작전을 대백제전으로 보는 것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한국고대사회연구소 편, 『주역한국고대금석문(註譯韓國古代金石文)』 2, 1992)
「광개토왕비문(廣開土王碑文)에 보이는 왜관계(倭關係) 기사(記事)의 검토(檢討)」(연민수, 『동국사학(東國史學)』 21, 1987)
「광개토왕릉비를 통해서 본 고구려의 영역」(손영종, 『력사과학』 118, 1986)
집필자
김창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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