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는 중생은 생로병사의 4대고(四大苦)를 비롯한 모든 고의 세계에서 존재하므로 인생의 세계에는 병고를 면할 수 없는 인과관계가 있고, 그 병고는 지·수·화·풍의 4원소가 고르지 않은 데 기인된다는 병리설을 주장하였다. 이 병리설은 인도의학에 의한 불교의 통설로서 용수(龍樹)의 저작인 ≪대지도론 大智度論≫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두 종류의 병이 있는데, 하나는 외인병(外因病)이고, 또 하나는 내인병(內因病)이다. 외는 한열(寒熱)·기갈(飢渴)·병인(兵刃)·도장(刀杖)·추락(墜落)·추압(推壓) 등이고, 내는 음식부조로서 404병(病)의 내병이 일어나는데, 그 내병은 지·수·화·풍의 사대부조에 의한 것이라 하였다.
당나라 의정(義淨)의 선인 ≪남해기귀내법전 南海奇歸內法傳≫에도 사대부조는 처음에는 지(地)가 대증(大增)하여 전신이 침중(沈重)하고, 두번째는 수(水)가 대적(大積)하여 체타(涕唾)가 괴상(乖常)하고, 세번째는 화(火)가 대성하여 두흉(頭胸)이 장열(壯熱)하고, 네번째는 풍(風)이 대동(大動)하여 기식(氣息)이 격충(擊衝)이라고 기술하였다.
이 병리설은 삼국시대에 백제에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중국 남조시대(南朝時代)의 ≪갈씨주후방 葛氏肘后方≫에 인용되어 있고, 또 7세기경인 당나라 초기의 손사막(孫思邈)이 저술한 ≪천금방 千金方≫에도 사대설에 의한 404병을 논하였다.
이러한 병리설들은 삼국시대의 고승(高僧)·대덕(大德)들이 소주(疏注)한 많은 불전(佛典)들을 통하여 불교를 신봉해 오던 일반 민중들에게 널리 파급되었을 뿐 아니라 불전 이외에도 중국의 의방서들을 통하여 우리 나라에 널리 소개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선 후기의학의 대표적 의방서인 ≪동의보감≫ 내경편에도 사대부조설에 의한 사대성형론(四大成形論)이 전개되어 있고, 천주실리학에 관련이 깊은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에도 같은 문구가 인용되어 있어 최근까지 이 병리설이 널리 우리 나라에 유통되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사대부조설은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자연과학에 정통한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기원전 504∼443)가 만물은 지·수·화·풍의 4원소로 된다고 하고 난(暖)·습(濕)·건(乾)·한(寒)을 4원질(四原質)이라고 주창한 4원소설에 기초를 둔 것으로서 인도의설과 그리스의학과의 사이에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을 연상할 수 있다.
인도가 그리스의 영향을 먼저 받게 된 것인지 혹은 그리스가 인도에서 그 영향을 먼저 받게 된 것인지 하는 전후의 문제에 있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나, 양자의 사이에 허다한 유사점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아마 알렉산더대왕의 원정이 두 의학의 접촉을 긴밀하게 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인도의설을 접촉한 삼국시대의 의학지식 중에는 간접으로 그리스의학의 감화를 받은 요소가 섞여 있지 않았나를 추정해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