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2년(광해군 14) 제자인 김지남(金止男)이 전라감사로 있으면서 간행하였고, 그 뒤 1674년(현종 15)에는 저자의 손자인 시현(時顯)의 발문을 붙여서 중간하였으며, 1678년(숙종 4)의 간본에는 송시열(宋時烈)의 발문이 붙어 있다.
1권 1책. 목판본.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항복은 임진왜란의 전후기에 어려운 국내외의 정치·경제·외교적 난국을 극복하는 데 전력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선 초기부터 거의 강요하다시피 해온 가례(家禮)의 시행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다.
이 책은 이러한 가례의 시행과정에서 오는 여러 가지 폐단을 계몽하기 위하여 저술한 것이다. 즉, 이 책의 서문에서 이항복이 기술한 바와 같이, 가례에서 제시하는 예제는 어디까지나 의절(儀節)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다가는 예의정신을 등한시하기 쉽고, 따라서 그 본질을 소홀히 하고 형식에만 얽매이고 마는 결과가 되기 쉽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항복은 고례(古禮)의 정신적인 근원인 『예기(禮記)』에서 사례(四禮)에 관한 여러 요긴한 항목과 술어 및 적절한 구절을 뽑고, 이언적(李彦迪)의 『봉선잡의(奉先雜儀)』를 많이 참고하여, 가례의 의절보다는 그 속에 숨어 있는 정신적인 예의 본질을 강조하고 계몽하기 위하여 이 책을 엮게 되었다.
비록 1권 1책에 지나지 않는 책이라고 할지라도 가례의 정신적인 길잡이가 된 중요한 책이었다. 조선 중기까지의 조선조에서의 가례의 인식과 그 시용이 어떠하였는가를 방증하는 데 귀중한 참고가 되는 저작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