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권 33책. 목판본. 주자(朱子)의 강목체(綱目體)를 따랐다. 33권 중 원편(原篇)이 29권이고 부편(附篇)이 4권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항로가 제자인 유중교(柳重敎)·김평묵(金平默)으로 하여금 편찬하게 하였다.
1906년 여러 독지가의 후원으로 간행되었다.
편찬동기는 유인석(柳麟錫)이 쓴 서문과 7조의 총서(總敍)에 잘 밝혀져 있다.
즉, 주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이 오대(五代)말까지로 끝나기 때문에 송·원대의 강목을 속강목으로 삼아서 편찬하되 강목의 정신인 대의명분을 밝히고, 당시 고려의 사정까지도 함께 기록하여 이민족에게 짓밟혔던 중국과 한국의 동시적 운명을 명분론·정통론에 의해서 서술하자는 데에 있었다.
이항로가 살았던 시기와 그 제자들이 활약했던 시대는, 양이(洋夷)라고 불리던 유럽 세력이 동아시아를 침략하던 시기였고, 얼마 뒤에는 일본까지도 대륙을 침략하던 위기의 시기였다.
여기에서 위정척사(衛正斥邪)가 강렬하게 주창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고려·송·원대의 동시적 상황을 대의명분적인 처지에서 관심을 두고 찬술하였다는 것은 어쩌면 당위적인 것이었다.
송대의 북방민족의 위협 아래에서 싹트기 시작한 민족주의·국가주의적 정신적 각성과 고려시대에 나타난 민족적 각성이 조선 말기의 현실에서 강렬하게 의식된 역사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원편 29권은 960년(광종 11, 송 건륭 1)부터 1367년(공민왕 16, 원 지정 27)까지를 강목체로 편술하였다. 강(綱)은 5행에 해당하는 큰 글자로 쓰고, 목(目)은 1행에 해당하도록 작은 글자로 서술하였다. 고려의 사실과 중국의 사실이 병술되고 있지만 중국이 먼저 기록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30∼33권의 부편에서는 원편의 서술에서 집약되는 여러 사항을 유취·비교·설명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서법(書法)·세년(歲年)·명호(名號)·즉위(卽位)·개원(改元) 등과 발명(發明)으로 되어 있다.
한편, 유중교의 수사품목(修史稟目)과 김평묵과의 편찬에 관한 왕복편지가 자세하게 들어 있어 이 책의 편찬과정을 아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이 책은 고려시대와 송·원대의 국제 관계는 물론, 한국과 중국이 북방민족에 의해 유린되고 통치되며 간섭받는 동아시아의 역사이지만, 그 편자인 이항로·유중교·김평묵과 간행에 공헌한 유인석 등이 모두 전통적인 가치관을 고수하는 사상체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 중심의 편찬에 한국 관계사를 병기하는 방법을 취하게 되었다.
아울러 동원된 자료는 구체적인 인용 서목이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자료적인 가치보다는 당시의 정신적인 차원에서 의의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예를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유인석이 서문에 ‘영력오병오(永曆五丙午)’를 서슴지 않고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영력이란 청나라에 망한 명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망명정부를 세운 영명왕(永明王)의 연호로서, 명나라의 마지막 연호인 숭정(崇禎)을 쓰는 것보다도 한층 숭명적(崇明的)이고, 청나라에 저항하는 정신을 확실하게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하였다.
이 책을 거슬러 올라가면 송시열의 숭명관과도 연결된다. 조선 말기의 애국적인 정신과 배외적인 행동을 역사적 각성을 통해서 호소하는 편찬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