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광복 후 1945년 10월 25일 일본인 판·검사가 일시에 퇴진하자 법원과 검찰에는 사법요원의 부족현상이 생겼다. 그래서 당시의 미군정청 사법부장을 중심으로 한 현직 법조인들은 이를 메우기 위한 긴급조치로 이 기관을 개설하기로 결정하였다.
소장에 권승렬(權承烈), 교수에 계창업(桂昌業)·이호(李澔)·홍진기(洪璡其)·염세열(廉世烈)을 임명하여 입소시험을 실시하고 61명의 합격자를 뽑았다.
이들 합격자를 입소시켜 필요과목에 대한 강의를 해오다가 예산부족과 미군정청의 거부로 개강한 지 불과 4개월 만인 1946년 7월에 폐지되었으며, 입소시험 합격자 전원은 사법관시보(司法官試補)로 채용되어 판·검사로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