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출신. 1913년 평양신학교 졸업과 동시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15년 조선예수교 장로회총회 창립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중국인 선교를 결의하게 되었다.
초대선교사로서 박태로(朴泰魯)·김영훈(金永勳)목사 등과 함께 중국 산둥성(山東省) 내양현(萊陽縣)에 파송되었다. 그들은 1914년 가족 동반하여 임지에 도착, 외지선교의 경험도 없이 다만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한다는 소명감으로 선교를 개시했다.
그러나 언어의 불통, 전통과 풍속의 차이 등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토착민의 박해까지 받게 되었다. 결국 1918년 산둥선교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겨우 50여명의 교인과 6개의 기도처, 3개의 학교설립이라는 성과만을 남긴 채 귀국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선교 사업은 그 뒤 홍승한(洪承漢)·박상순(朴尙純)·방효원(方孝元) 등에 의하여 계승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