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송암. 황해도 장연 출신. 개신교 최초의 유아세례 수세자(受洗者). 아버지는 장로교 최초의 7인 목사 중의 한 사람인 서경조(徐景祚)이다.
1905년 경신학교(儆新學校)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설립한 해서제일학교(海西第一學校), 안창호(安昌浩)가 설립한 평양대성학교(大成學校), 모교인 경신학교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14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난징(南京)금릉대학(金陵大學)을 다녔다.
1919년 김규식(金奎植)·여운형(呂運亨)·선우 혁(鮮于爀)·신석우(申錫雨)·장덕수(張德秀)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을 조직하고 당수로 취임하였다.
상하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조직된 뒤 제헌의정원 내무위원으로 활약하면서 국내에 잠입하여 동지의 연락과 독립자금모금에 전력하였다.
또한 교육과 사회사업에도 뜻을 두어 대한적십자회를 창설, 난징·미주·하와이 등지에서 모금한 돈으로 간도 지방 독립운동가 가족들을 도왔다.
1923년 상하이에 남화학원(南華學院)을 설립하고, 1933년 상하이의 인성학교(仁成學校)이사장, 상하이한인기독교청년회이사장, 한교협회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8·15광복 후 1947년 귀국하여 새문안교회장로, 서울중앙기독청년회이사, 경신학교이사를 지냈고, 1950년 경신학교이사장이 되었다.
6·25전쟁 중 부산에서 대한기독교청년회연맹 전시대책위원회위원장, 맹인협회·농아협회이사장으로 활약하였고, 환도 후에 기독교학교연합회를 조직하였으며, 1953년 경신학교교장에 취임하였다.
기독교아동복지회재단이사 및 안양기독보육원재단이사 등을 맡아 사회복지분야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1960년 경신학교에서 정년퇴직한 뒤 대한예수교장로회 경기노회 부회장을 지냈다. 1968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