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태생. 서울 새문안교회가 1887년 조직되었고, 그 해 그 교회의 언더우드(Underwood, H. G., 元杜尤)목사가 4명의 어린이를 데리고 구세학당(救世學堂 : 지금의 儆新中高等學校)이라는 신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그는 김규식(金奎植) 등과 함께 최초의 학생이 되었으며 선교사들은 1893년에 선교사공의회를 조직하였고, 1901년부터는 한국인 장로 3명, 조사 6명, 선교사 25명으로 합동공의회를 조직하였는데, 그 해 그는 조사가 되었다.
그리고 1904년에는 장로가 되었는데, 그로 인하여 새문안교회는 서울에서는 최초의 당회(堂會)를 가진 조직교회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1907년에는 위 합동공의회가 해산되고 한국장로교회가 하나의 독립교회로서 독로회(獨老會)라는 자주적인 전국치리기구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그 독로회의 정식 총대로 참석하였으며, 그 뒤에도 계속 총대로 참석하여 한국장로교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1910년 비로소 김규식이 장로가 되고 1912년 차재명(車載明)이 장로가 됨으로써 당회원이 당회장 언더우드목사까지 모두 4명으로 증원되었다.
그 때까지 송신령(宋神靈)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그가 홀로 당회장과 함께 개척전도에 헌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