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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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승문원·규장각에 소속된 관원.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성무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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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승문원·규장각에 소속된 관원.

내용

승문원·규장각에 소속되어 사대교린문서(事大交隣文書)와 자문(咨文)·어첩(御牒)·어제(御製)·어람(御覽) 등의 문서를 정서(正書)하던 관원이다. 정원은 규장각에 8인, 승문원에 40인이 있었다. 이들은 외국사행에도 수행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매년 1·4·7·10월에 승문원의 제조(提調)가 행하는 시험에 응시하여 우수한 자는 차차로 녹관(祿官)에 임명하였다. 특히, 승문원은 사대교린문서를 관장하여 사대문서 및 부본(副本)들은 선사자(善寫者)가 서사(書寫)하여야 하였으므로 당상관이나 문신이 아니더라도 사자(寫字)에 특이한 재능이 있는 자로 하여금 서사하게 하였다.

이렇듯 서사관의 임무가 막중하므로 이들에 대해서는 수령을 거치지 않더라도 4품이상계로 승천(陞遷)될 수 있는 특전을 주었다.

개국 초에는 사자관이 없었고, 문신 중에서 글씨 잘 쓰는 자로 하였는데, 뒤에 문신으로서 글씨 잘 쓰는 자에게 군직(軍職)의 직함을 주고 매일 근무하게 하였는데, 이해룡(李海龍)·한호(韓濩)가 곧 그 시작이었다.

참고문헌

  • - 『세조실록(世祖實錄)』

  • - 『육전조례(六典條例)』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 『대전회통(大典會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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