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의 탈을 쓰고 추는 춤. 삼국시대에 서역(西域)으로부터 들어와 연행되었다. 처음 사자가 우리의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지증왕 13년인 512의 기록이다.진흥왕 때 우륵(于勒)의 12곡 중에 「사자기(獅子伎)」의 이름이 나오고, 최치원(崔致遠)의 「향악잡영(鄕樂雜詠)」 5수 중 산예(狻猊)는 바로 사자무에 대하여 읊은 시이다.
그리고 1893년(고종 30)에 간행된 『정재무도홀기(呈才舞圖笏記)』에 그 무보(舞譜)가 전한다. 윤용구(尹用求)의 『국연정재창사초록(國讌呈才唱詞抄錄)』에 의하면, 사자무는 본래 성천지방의 잡극이었는데, 1887년에 궁중에 들여왔다고 전한다.
사자춤은 「영산회상(靈山會相)」에 맞추어, 청사자(靑獅子)·황사자(黃獅子)가 요신족도(搖身足蹈)하여 앞으로 나아가 동쪽과 서쪽으로 나누어 선 다음, 엎드렸다가 일어나 탁지(啄地)·관목(矔目)·휘미(揮尾)·개구고치(開口鼓齒) 등 사자의 여러 가지 동작을 흉내내며 추는 춤이다. 현재 함경북도 북청지방의 「북청사자놀음」과 황해도 「봉산탈춤」 속에 사자춤이 들어 있다.